화면은 세련되고 컷 또한 유려하다
그 속을 노니는 연기도 부드럽고 깨끗하다
마치 현실의 곳이 아닌 어딘가 몽환의 자치구인 듯 하기도 하다
구질구질한 삶의 편견이나 찌질한 도덕의 비판은 택도 없고
고전적 미장센과 클래식이 어울리는 쿨한 공기 내음 속에서 저만치 희미한 물안개 근처 어딘가에서는 원숙하게 찌들은 묵직한 나이테의 원목 테이블에 진액같이 흐르는 달큰한 차의 향기라도 뿌옇게 뿜어져 나오고 있어야 할 것 같다
최소한
그리고 나서야 영화를 보아야 할 것이다
아니 그의 이야기를 들어야 할 것이다
그가 생각하는 이야기를
보여주고자 하는 것에 대하여
그것은 주로 오랜동안 그의 머리 속에 있어 녹슬고 빛 바랜 톤을 카메라를 통하여 만들고 꾸며서 연출해놓은 것들에 관한 것일 것이다
그 속에 열일곱 소녀 은교(김고은)가
그리고 노작가 이적요(박해일)
그의 제자 서지우(김무열) 등이 있다
처음부터 노작가 이적요는 자신의 늙고 추루해진 속살을 바라본다
어느날 나비처럼 날아와 의자 속에 파묻혀 잠들은 어린 소녀 은교
그러나 이런 경우 어리다곤 하지만 그것이 곧 순진하다는 것과는 별개일 수도 있다
또한 그것은 너무 익숙해 마치 어느 어디선가 보고 들었던 것 같아서
너무나 익숙해서 떠오르지 않는 알 수 없는 금언 같은
젊음이 너희의 노력으로 받은 상이 아닌 것처럼
늙음 또한 나의 잘못으로 인한 벌이 아니라는
그런 이적요의 이성과 은교에 대한 본능의 대치 속에서 자연스럽게 그 틈새를 지극히 현실의 시선으로 재단하고 파고 들어가는 공대생 제자 서지우
설정과 예정된 수순은 드러나있고
스토리는 단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이미 결말은 현실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할 이적요의 성정에 치우쳐있었고
다만 중간중간 끼어드는 저 공대생 서지우의 변수가 존재할 뿐 이다
고전적 연출 속에
스토리의 흐름은 차분한 듯 하지만
어찌보면
이러한 인위적 스킬들은
키 작은 소재를 영상에 버무려 크게 희석시켜놓는 용액의 역할로 쓰인 듯 하다
또한
설마 이 영화는
종반 몇분간의 은교와 서지우의 그 격정을 대단한 히든카드로 보여주기 위해 그 길고 긴 시간 뒤의 짧은 크라이막스로 배치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마지막에
이적요의 마음을 향해 울먹이다 가는 은교는
왠지
문밖을 나가자마자
곧 정신을 차리고 다시 남자를 찾기위해 주위를 두리번 거릴 것 같다
그녀의 뜬금없는 자기변명처럼
외로워서
그래서
사실
이도 저도 아닌 회색 지점에서 그 정체성을 잃어버린
이 영화는
조금이라도 더 대박을 위해서라도
처음
첫 단추부터
은교의 관점으로 보여주었어야 했을 것이다
그런 후에야
비로서
문학이 아닌 이 영화는 모든 게 다 재편집 되면서
은교의 순진스럽고 야한 의도로 시작된
빛 바랜 사춘기 시절
그녀의 단편적 자화상이라는 은밀한 그림들이 보이기 시작했을 것이다
이적요
서지우
그리고 감독
그 외 그녀의 삶을 스쳐 지나가는 모든 자들을
가차없이 삭제해버린 그녀의 은밀한 그림들이
'무비트릭' 카테고리의 다른 글
너는 여기에 없었다 / 주문형 오가닉 수제 햄버거처럼 (0) | 2018.09.30 |
---|---|
침묵 / 그 고집스럽고 올드한 나르시즘 (1) | 2018.09.17 |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스 / 영리한 자폭 러브스토리 (0) | 2018.09.03 |
변산 / 관객들은 모두들 개운한가요 (0) | 2018.08.22 |
마녀(Ⅲ) / 스낵과자와 생선 그리고 다양다각 (0) | 2018.08.14 |